파친코, 이민진 작가 및 리뷰
이민진 작가님은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7살 때 가족들과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갔다. 그 후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공부했고 제일 조선인의 삶에 대해 배우게 되면서 한인 디아스포라에 관심을 갖게 되셨다고 한다. 파친코는 발표되기까지 거의 30년 정도가 걸렸다. 이야기에 대한 착상은 1989년에 얻었고 2002년 조선계 일본인 아이에 대한 단편소설 모국을 발표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에 여러 조사와 인터뷰를 통해서 소설을 다시 쓰기 시작해서 2017년에 이 책이 출간된 것이다. 오랜 시간 이야기를 품고 또 공을 들여서 쓰고 고친 끝에 이런 대작이 탄생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놀라웠던 점은 이 책을 통해서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선자의 삶도 체험해 볼 수 있고 일본에서 나고 자란 노아와 모자수의 삶도 체험해 볼 수 있고 일본에서 태어나서 이후 이전 세대의 가족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솔로몬의 삶도 체험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고한수의 삶도 어느 정도는 체험해 볼 수 있었고 그간 다양한 책들을 통해서 다양한 간접 경험들을 해왔지만 이렇게 80년에 가까운 세월을 한국과 일본을 넘나들면서 무려 4세대에 걸친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이토록 생생하게 동시에 경험해 본 적이 있었나 하면 없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한 사람의 삶과 정체성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이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때로는 정말 복잡한 문제가 될 수 있는지를 조금이나마 깨달은 것 같다. 단지 힘든 삶을 살았구나 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들의 경험이 삶의 어떤 순간들에서 그 미묘한 지점들을 만들어내는지 그것이 고향과 민족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형성하는지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같은 점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민진 작가님 역시 이민 1세대라는 정체성이 자신의 관점에 영향을 주었다고 말씀을 하신 바 있고 특히 역사가 함부로 제쳐놓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셨다. 일본 내에서 제일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정말 오랫동안 이루어져 왔고 우리나라에도 제일 조선인에 대한 이야기가 사실은 충분히 알려지지는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문학을 통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이토록 생생하게 접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기도 했고 정말 잊지 못할 경험이었고 그래서 꼭 읽어 보시라고 추천드리고 싶다.
제목이 왜 파친코인가
이 점이 사실 책을 읽기 전에 가장 궁금한 부분이었다. 파친코 화면에 떠오르는 게 일본 애니메이션 같은 데서 본 장면들이 전부라서 머릿속에는 굉장히 어떤 정형화된 그런 이미지들 밖에 없었다. 책을 읽어보실 분들을 위해서 자세히 말씀드리지는 않겠지만 이 소설에서 파친코는 굉장히 중요하고 또 상징적인 공간으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소설 안에서 이 공간은 당시 제일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원하는 직업을 선택할 수 없었던 이들의 현실을 반영한 공간이기도 하고 또 동시에 삶에 대한 강인한 의지와 또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는 삶의 방향성 자체를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가치 판단의 대상으로만 볼 수가 없었다. 한 줄로 요약되지 않는 이들의 삶 자체가 그 안에 들어있으니까 파친코어의 왁자지껄한 소리와 구슬 굴러가는 소리 화려한 조명 이런 것들을 이들의 삶과 나란히 놓고 떠올려 보면 약간은 기묘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파친코라는 공간적 배경을 다룬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독특하고 특이한 배경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난 뒤에는 어떻게 보면 등장할 수밖에 없는 그런 공간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최근에는 드라마로 더 유명해졌는데 드라마가 소설에 나오는 모든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아서 드라마를 보신 분들도 책을 읽으시면 새로운 시각으로 읽으실 수 있을 것이다.
간단한 스토리
일제강점기에 부산 영도에서 태어난 선자는 하숙집을 하는 부모님과 함께 가난한 상황 속에서도 꿋꿋이 삶을 꾸려 가는 인물이다. 아버지 훈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어머니와 함께 하숙집을 운영하면서 씩씩하게 컸다. 그런데 어느 날 선자는 시장에서 우연히 생선 중계상 고한수를 알게 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이후 임신을 한 선자는 당연히 고한수와 혼인을 하게 될 줄 알았는데 뒤늦게 그가 사실 일본의 아내와 딸이 있는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이 선자와 아이의 삶을 책임지겠다고 외치는 고한수의 곁을 떠난다. 배 속에 있는 아이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해하던 선자의 앞에 마침 나타난 인물 백이삭. 이삭은 일본에 있는 형네 집에 가려던 도중에 건강이 악화돼서 잠시 선자의 하숙집에 머물고 있던 참이었는데, 이삭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선자와 선자의 어머니인 양진에게 깊은 감사를 느끼고 자신이 선자의 뱃속에 있는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주리라 다짐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혼인을 하고 함께 이삭의 형이 사는 일본 오사카로 떠난다. 그때부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강인하게 살아남아야 하는 새로운 삶이 펼쳐진다. 이후에는 선자와 그 가족이 조선인으로서 일본에서 지내며 겪어야 했던 수많은 일들이 펼쳐지고 그 이야기는 선자뿐만 아니라 선자의 아들인 노아와 모자수 손자인 솔로몬 그리고 고한수를 비롯한 수많은 주변 인물들로까지 이어지고 손자의 부모님 세대부터 시작해서 손자 세대까지 총 4세대에 걸친 이야기이다. 이렇게 보면 읽는 데 시간이 꽤 걸리겠다고 생각이 들 수 있는데 문장이 간결하고 술술 잘 읽히는 데다가 서사 자체가 굉장히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191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부터 1989년 일본까지 80년에 가까운 역사를 이야기하다 보니 자칫하면은 전개에 있어서 좀 루즈해질 수도 있고 중간에 길을 잃을 수도 있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생략할 이야기는 과감하게 생략하기도 해서 인물들의 심리가 잘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너무 심파적으로 느껴지지는 않게 호흡을 절묘하게 조절했다.